꼬부기의 글첩

홀씨처럼 흩어진 인연들에게

돋보기쓴꼬부기 2025. 6. 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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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 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 이문재의 민들레 압정 -


살다 보면  
이름조차 희미한 수많은 인연들이  
계절 바람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무 일 아닌 듯 흘러간 그 순간들이  
내 마음 어딘가를 적시고 있었다는 걸.  

되돌아보면,  
나는 너무 조용히 사랑했고,  
너무 쉽게 기대했으며,  
또 너무 많이 바랐던 것 같습니다.  

진심을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잠시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마음을 주기보다  
받을 준비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랑도 기대도  
늘 상대방의 손길을 먼저 바랐던  
그때의 나를 조용히 되돌아보게 됩니다.  

만남이 시작되던 그 순간부터  
이별의 그림자는 함께 자라났는지도 모릅니다.  
민들레가 꽃대를 올리는 순간부터,  
홀씨는 언젠가 떠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홀씨 같이 흩어진 인연들은  
지금은 어디쯤에서 어떤 바람을 맞고 있을까요.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를 때면,  

스쳐간 손길 하나가  
잊은 줄 알았던 그 온기를  
어느 날 불현듯 마음을 아프게 물들입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늦은 후회 하나 품은 채,  
조용히 깨닫습니다.  

진정한 인연은  
소리 없이 스며드는 것이고,  
그런 인연 앞에서라면  
고개를 더 자주 숙이고  
머무는 발걸음도 더디게 했어야 했음을...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진 인연들,  
그 아름답고 조용한 이별들 앞에  
이제서야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꼬부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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